2021-06-10
2회 : 담합 제안을 받으면 '물컵'을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
라면담합 사건을 아시나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농심, 삼양,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라면값 공동 인상을 담합했다며 과징금 1354억 원을 부과했습니다. 기업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격 정보를 교환한 건 맞지만, 언제, 얼마로 인상하자고 담합을 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2015년 대법원은 정보를 교환했다는 사실만으로 담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기업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정위로서는 뼈아픈 기억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가격이나 생산량 등을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담합의 유형 중 하나로 포함됐습니다. 이 정보교환 담합이 업계에선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헷갈려합니다. 경쟁사와 어디까지 얘기하면 괜찮은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기업들에 공정위가 추천하는 담합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단합니다. 경쟁사 직원은 되도록 만나지 말라는 겁니다.●가격, 물량, 거래조건은 함구해야 공정위가 아무리 경쟁사 직원을 피하라고 강조해도 기업들로선 사업을 하다 보면 동종업계 사람들을 피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죠. 같은 업종에서 일하니 마음도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해 얘기할 기회들이 생기죠. 기업 직원들이 경쟁사 직원을 만날 때 피해야 할 주제는 무엇일까요. 우선 세 가지만 기억해봅시다. 바로 가격, 물량, 조건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상품용역 원가 △출고량재고량판매량 △상품용역 거래조건 △대금대가 지급조건이 교환이 금지되는 정보입니다. 생각보다 쉽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정보들은 어찌 보면 당연히 경쟁사에 알려선 안 되는 정보들이죠. 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친한 경쟁사 직원과 만나 일 얘기를 하던 도중에 이번 신제품 원가가 1만 원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환이 금지되는 정보를 단순히 교환한 것만으로 문제가 되진 않아요. 경쟁사와 앞으로 이런 정보를 교환하자고 합의를 해야 정보교환 담합이 성립됩니다. 실수로 금지 정보를 한두 번 언급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죠. 하지만 실수인 척 계속 정보를 교환하게 되면 엄연한 묵시적 담합입니다. 경영 방침, 마케팅 전략, 채용 인원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이런 정보는 교환이 금지되는 정보가 아니니 괜찮습니다. 다만 이런 정보를 교환하면서 함께 신규 경쟁자의 출현을 방해하면 담합이 될 수 있습니다.●담합의 세계에 완전범죄는 없다공정위는 영원한 담합은 없다고 말합니다. 담합이 걸리지 않고 계속될 순 없단 거지요. 우선 담합하는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경쟁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익을 얻으려 손을 잡지만 우리 회사에 이익이 될 어떤 변수가 터지면 또 어찌 돌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리니언시 제도가 있으니 담합은 영원하기 힘듭니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을 자진신고한 기업에 처벌을 줄여주는 제도입니다. 어떤 기업이든 경쟁 기업과 담합하다가 자기 회사의 처벌을 줄이려 담합의 과거를 폭로해볼 버릴 수 있는 거지요. 누군가로부터 담합을 제안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합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으려면 방법이 있습니다. 공정위가 자주 권하는 행동 원칙이 있습니다. 만약 식당이라면 물컵을 쓰러뜨리며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한 뒤 자리를 뜨고 회사에 보고하라는 겁니다. 공정위가 왜 굳이 물컵을 쓰러뜨리라고 했을까요. 나중에 담합 누명을 쓸 때 식당에 함께 있던 경쟁사 직원이 내가 담합을 권했을 때 말로만 반대했지 사실상 찬성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로도, 행동으로도 정확하게 반대했음을 표출해야 하는 것이죠. 공정위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한국 기업이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담합으로 부과 받은 벌금과 과징금 규모는 모두 3조6000억 원입니다. 동업자들끼리 협력하는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 탓에 국제사회에선 담합 처벌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 기업이 담합 리스크에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